티스토리 뷰

728x90
반응형

조선왕조 어보, 어책, 교명은 조선시대 왕실의 지시나 명령을 서기로 기록해 둔 것입니다. 이 문서들은 왕실 명령이나 국가 중요사항을 기록하고, 중요한 일이 있을 때 국민들에게 전하며, 법률이나 제도 개정 등 국가의 방침과 계획을 기록하였습니다.

 

조선왕조어보

 

500여 년 '조선왕조 어보·어책·교명' 보물 지정

어보, 어책, 교명들은 조선시대 제도와 권위를 나타내는 중요한 유물이며, 한국 역사문화유산으로서 국보급 유산입니다. 이번 보물 지정으로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조선 왕실의 의례용 도장과 문서들은 조선시대 왕실의 의식과 관습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왕실은 의식과 의례를 중요하게 여기고, 이를 강화하기 위해서 독창적인 도상과 문서를 만들어왔습니다. 이에 따라 의례용 도장과 문서들은 왕권의 권위와 성공적인 통치를 담은 것으로, 조선 왕실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중요한 유물입니다.

 

또한, 이러한 도장과 문서들은 귀중한 금속과 장식품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그 자체로도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 왕실의 의례용 도장과 문서들은 한국 역사문화유산으로서 대표적인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의례용 도장은 중국에서 본래 의례와 관련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후에 인장이나 서명이 생기기 전에 서면에 각인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특정 단체나 기관의 이름, 로고, 슬로건, 약칭 등을 각인하는 데 사용되며, 형태는 주로 원형, 사각형, 타원형 등이 있습니다.

 

손으로 쓰는 서명이나 인장보다 믿음직스럽고 멋진 이미지를 나타내며, 다양한 문서나 공문서, 고급 서류에 사용됩니다. 각인 기술이 뛰어난 기술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며, 일반적으로는 발행 기관에서 해당 인증에 대한 승인 및 발급과정을 거칩니다.

신분에 따라 어보는 금보, 옥보, 은 등

신분에 따라서 어보는 금보, 옥보, 은 등으로, 어책은 옥책, 죽책, 금책으로 구별했습니다. 그 이유는 예로부터 금·옥·은은 중국 문화에서 중요한 자연재료였기 때문입니다. 금은 보물로 여겨졌으며, 옥과 은도 높은 가치를 지니며, 이러한 보물들이 각인 도장이나 책에 사용되면서 더욱 귀중한 물건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리고 각 보의 차이는 해당하는 사람의 지위나 존경도에 따라 구분되었습니다.

 

검보는 중요한 지위의 사람이 사용했으며, 옥보는 다소 중요한 지위의 사람이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은인은 비교적 일반적인 상황에서 대부분 사용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옥책은 귀중한 책에 사용되었으며, 금책은 더욱 귀중한 책에 사용되었습니다. 죽책은 보통 책에 사용되었으며, 저마다 다른 가치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구분은 중국 문화에서 인물들의 등급이나 위치를 나타내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각인 도장과 책은 중요한 상징물로써 중국문화의 일부를 이루고 있습니다.

 

교명은 왕비와 왕세자 책봉할 때 하사는 훈유문서로 지위가 지닌 고귀함을 강조하여 책임을 다하는 훈계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유는 교명은 중국 역사에서 왕비나 왕세자 등의 지위가 높은 인물이 그 자리에 앉았을 때 부여되는 문서입니다. 이러한 고위인사들은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이에 따라 그들이 책임지는 역할도 크게 증가했습니다.

 

따라서 교명은 그들이 맡는 책임과 자리에 앉은 존귀함을 강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교명은 그들의 행동과 사고에 대한 교육적인 내용도 담고 있으며, 나아가 그들의 도덕적인 면에 대한 가르침을 전하고, 국가와 사회에 봉사하는 책임을 지키기 위한 지시사항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교명은 중국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고위 인사들의 존경과 책임감을 상징하는 중요한 사적인 문서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역사기록으로 그 시대의 정치, 문화, 의례 등을 소중하게 보존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왕실 의례와 관련된 문서들은 그때 당시에 사용되었던 각종 재료와 예쁘게 디자인된 의복, 금보, 옥포 그리고 그에 대한 훈계 등을 확인할 수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입니다.

 

그리고, 이 기록들은 귀중한 상징물이었기 때문에 매우 신중한 관리와 보존이 이루어졌으며, 그 가치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높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기록에는 문장이 우아하고 멋있게 구성되어 있어 현재까지도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을 받으며, 중국문화 및 한국문화와 관련된 학술적인 연구와 함께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는 중국 및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어보 등의 각인 도장과 책은 중국 및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소중한 자산으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 자료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사용된 기술과 문화적인 특징들을 확인할 수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2017년 유네스코는 중국과 한국의 어보, 인장, 책 등을 포함한 "도장, 인장, 책, 인명 및 관련한 전통 기술"을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록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는 이러한 중요한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며, 이를 통해 전 세계 인류의 역사와 문화적인 이해를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중요한 자료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가지고, 이를 지속적으로 보존하면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조선시대 아미타여래구존도와 순천 동화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등 보물의 가치를 인정

이유는 '아미타여래구존도'와 '순천 동화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조선시대의 불교 미술 작품으로, 불화와 불상의 아름다움과 높은 종교적 가치로 인해 보물급 유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아미타여래구존도'는 그림과 글씨를 함께 담은 복사본으로, 원본은 중국의 양주시 황룡사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복사본은 1565년에 조선시대의 훈민정음 창제자이자 화가였던 세종 10년 창경궁지장(宮仗)인 서만천(徐萬天)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명나라 시대의 원본을 본교본으로 하였습니다.

 

'아미타여래구존도'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유명하며, 중국, 일본 등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순천 동화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1657년에 경상남도 순천시의 동화사에서 봉안된 불교 조각상으로, 자연과 미술, 종교성이 하나로 어우러진 소중한 미술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조각상은 다양한 소재들을 절묘하게 조합하여 만들어진 고도의 기술과 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이 조각상을 통해 조선시대의 목조조각 기술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들도 확인할 수 있어, 역사와 예술에 관심을 가지는 다양한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아미타여래구존도'와 '순천 동화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문화유산으로서 대중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보물급 유물입니다.

 

문화재청이 지정한 이번 보물들은 중요한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지닌 미술품들로서, 국가나 지역사회 등 많은 사람들에게 미술, 역사,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보물들은 자연적인 퇴색 혹은 파손 등으로 보존상태가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보존과 활용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관련 기관들은 이러한 보물의 보존과 관리, 전시 등을 위해 적극적인 자세로 협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전문가들과 함께 적극적인 보존 및 관리 방식을 찾고, 전시나 교육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보물을 활용함으로써, 이러한 보물들이 보다 체계적으로 보존되고 전 세계 인류에게 더욱 잘 알려지고 사랑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보물의 보존과 활용을 위한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며, 관련 기관들은 이러한 노력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728x90
반응형